묵상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은혜를 받으면 슈퍼맨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은혜를 받으면 능력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채우심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슈퍼맨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정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강해지기보다는 점점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 <모든 날이 은혜스럽다>, 김병삼』
 정말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집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사람은 성품에서 드러납니다. 능력은 은사로 할 수 있지만 성품은 은혜를 받아야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계엄령 중에 영웅들

저는 이번 계엄령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전시 상황도 아니고 내전 상황도 아닌데 단순히 평소 적대 감정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계엄령을 내려서 나라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뉴스나 유튜브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계엄령 중에도 나라를 지킨 영웅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가장 먼저는 국회 보좌관들과 기자들이 군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국회를 지켜 달라는 호소에 퇴근하자마자 모여든 시민들이 있었고 일부 경찰들은 일부러 국회의원이 국회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한 법무부 감찰관은 계엄에 관한 회의가 주관될 것을 알게 되자 바로 계엄에 반대하며 사표를 냈고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명령에 할 수 없다고 하자 명령 불복종으로 옷을 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  중에는 본인 양심에 잘못됐다 싶으면 국방부 장관의 명령도 거부했습니다. 하루도 안가 계엄령이 끝난 것은 이런 숨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의 무게

화요일 수요일 사이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설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11월의 첫 눈이 폭설인 적도 없었고 기상 관측 아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운전을 하면서 길이 미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길이 괜찮았고 눈도 빨리 녹았습니다. 뉴스를 보니 이번 눈은 수분을 많이 함량한 습한 눈이라고 합니다. 습한 눈은 건조한 눈에 비해 3배 정도 무겁기 때문에 나무가 쓰러지거나 시설물 피해가 많았습니다. 대신 습한 눈은 잘 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조한 눈보다 덜 쌓이게 된다고 합니다. 습한 눈! 무거운 눈!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에 눈물의 무게를 더하면 얼마나 무거울까? 그냥 기도보다 눈물의 기도는 얼마나 더 무거울까? 다윗의 눈물의 기도를 병에 담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도 무겁게 느끼시기에 더 잘 응답하시지 않을까?“ 여러분의 기도에 눈물을 더해보세요. 무거울수록 진지함은 배가 됩니다.

50대의 눈물

어느 시사프로에서 ‘50대의 눈물’편을 다뤄서 잠깐 보게됐습니다. 북유럽 국가는 정년퇴임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실제적 정년이 50대라고 합니다. 한 대기업 은퇴자가 나왔는데 화려한 경력과 실력이 있어도 재 취업하기가 어려워 지게차 자격증을 따고 취업 준비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간 돈을 모았으니 부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녀들 대학교 등록금에 집 대출금에 실제로는 현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연금을 타기 전까지 어떻게든 10년을 버텨야 하기 때문에 50대는 재 취업에 뛰어 들어야만 한다는 시사 프로그램 내용에 참으로 대한민국이 살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사례 중 치킨집 사장님이 나왔는데 배달의 민족 이벤트에 고객들이 싸게 치킨을 살 때 싼 가격에 주문을 하지만 그 손해는 점주가 감당한다고 합니다. 프렌차이즈 비용에 배달앱 비용에 다 빠지면 치킨 한 마리 마진이 천원입니다. 왜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흘리는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마진 천원, 땀 흘려 수고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이 성경에 말하는 공의와 정의입니다. 올바른 저울추는 업주와 플렛폼 업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대한민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불공정에 관심을 가지면 서민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역할을 성경에서는 구약에 등장하는 왕들이나 선지자들이 감당했습니다. 그들이 해야할 정치는 '미슈파트' 공의와 정의인 것입니다. 땀 흘려 수고한 사람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대학교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가장 놀라운 대학은‘고래 뱃속’이다! 요나가 깊은 바다에 던져져 깊은 물속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굴복했을까? 하나님은 정말 이상한 곳으로도 그의 자녀들을 보내시는 것이다. - <복음에 대하여>, 찰스 스펄전

진에드워드 작가의 글이 생각이 납니다. 고난이 없으면 성도는 변하지 않는다구요. 정말 그렇습니다.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대학교는 '고래 뱃속'입니다. 여기를 통과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신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경외하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사랑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면 기도할 수 있지만 존경하면 닮으려고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죄인된 인간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습니다. 꼭, 어떤 '고래 뱃속'과 같은 상황에서 히브리어로 '타밈' 경외가 시작됩니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졸업해야 하는 대학 '고래 뱃속'입니다. 

정약전의 감사

소설 <흑산>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정약용의 가문과 민초들의 굴욕, 그 소용돌이 속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약종은 순교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떠납니다. 소설 <흑산>의 주인공은 정약전입니다. 흑산도에서 삶을 살게 된 정약전은 자칫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유배지에서 죽음을 택하거나 삶을 포기하는 일들이 잦았는데 그는 흑산이라는 이름을 자산(조금의 빛이 스며들 수 있는 검은색)으로 바꾸어 살아갑니다. 소설 속에서 정약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살자. 여기서 사는 수밖에 없다. 고등어와 더불어, 오칠구와 더불어 창대와 장팔수와 더불어 여기서 살자. 섬에서 살자.”
 그러면서 바로 이 흑산도, 아니 자산도에서 정약전은 우리나라 주변 어족들의 정보에 대한 명저 <자산어보>를 쓰게 됩니다. 그는 차선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 것입니다. 어부들을 위해 책을 슨 정약전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기에 마지막 여생을 보람있게 보냈습니다. 환경을 바꾸는 힘은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대형 마트를 가면 생떼를 부리는 아이를 가끔 보게 됩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보면서 사달라고 울면서 난리입니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고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죠. 또한 인생을 살다보면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음에도 끝까지 바꾸려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나는 변화되기 싫으면서 배우자가 자녀가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을 보면서 바꿀 수 없는 것은 배우자와 아이들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로 적용해 봤습니다. 
'희생'의 가치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다면 좀 더 원만한 가정생활 또 직장에서 대인관계가 되지 않을까요?
오늘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을 억지로 바꾸려고 노력하기 보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용기를 가지고 힘을 다한다면 보람있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샤프트

수요일 고대역 삼거리에서 유턴하는데 갑자기 차가 멈췄습니다. 난감했습니다. 견인차가 올 때까지 계속 오른쪽으로 이동하라고 수신호를 보냈습니다. 엔진은 이상없고 혹시 미션이 망가졌나? 미션 망가지면 수리비 많이 나올텐데! 걱정하며 한숨 쉬고 있을 그 때 견인차가 왔고 미션수리점과 바로 옆에 쉐보레 정비소가 맞 붙어 있는 곳으로 차를 내리고 쉬는 날이라 그냥 차만 두고 집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목요일 미션 집 사장님이 점검해 보시고 미션은 이상없다며 옆에 쉐보레 정비소에 말해 놔서 차량 점검한 결과 차량 앞 바퀴쪽 샤프트가 부러졌다고 알려줬습니다. 엔진도 이상없고 미션도 이상없는데 엔진의 힘을 바퀴로 보내주는 연결 축 샤프트가 부러졌으니 엑셀을 밟아도 차량 rpm만 높아지고 앞으로 가질 못했던 것이지요!
 수요일 그렇게 고생한 후 교회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읽는 책이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의 기도'인데 리더들이 깊은 기도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차가 고장나고 그 원인을 알게 되자 꼭 샤프트가 기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엔진이 돌고 기어변속 미션이 정상이어도 샤프트가 부러지면 소용없구나! 저 하늘의 하나님이 나에게 엔진 도는 힘처럼 그렇게 힘을 주시려고 해도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내 삶 속에서 아무런 힘도 없겠구나! 

부러진 샤프트처럼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리 비용이 좀 들었지만 영화같은 이틀을 보내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엔진의 동력을 바퀴에 전달해주는 샤프트! 기도 생활 점검 수시로 해야 되겠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기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겠어요!”
  경호원이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그가 할 일은 한 가지였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안전을 위해, 강당 무대 뒤편에서 그를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경호원이 통로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나갔다 들어와 보니 그 짧은 시간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사라지고 없었다.
  경호원이 무대 뒤편을 살펴보고 있는데, 무대 쪽에서 절박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대로 올라가 보니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얼굴을 바닥에 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하나님 없이는 이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설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의 기도>
수 많은 집회를 감당한 목사님은 글로벌 리더에게 조언을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했습니다.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탄생성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워질 수 있고,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 있는 삶 속에서 “우연에 의해 존재하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혁명이나 영웅주의에 기대지 않고, 우리 내면의 힘을 기르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곧 탄생성(natality)을 발휘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탄생성이란 늙음이나 젊음에 좌우되는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비루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탄생성’은 오늘날 정말 중요한 능력입니다. 새로운 직장, 취미생활, 자격증 공부 등 처음 시도하는 것이 어렵지 막상 적응하면 별 것 아닙니다. 실패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이 쌓이면 노하우가 되고 삶의 성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의 근원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은사로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이러한 인간의 의지력을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탄생성 뿐 아니라 창조적 능력도 주셔서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탄생성이 있음을 알고 주저 앉지 마세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번호 키 1004

택배 배송 알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길음 뉴타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어서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요즘 아파트는 참 복잡합니다. 지하 층 별로 해당 동 출입구가 있어서 지하 2층으로 갔다가 3층으로 갔다가 심지어 그렇게 5층까지 가서 겨우 출입구를 찾았습니다. 배송 시간 안에 물건이 도착해야 되기 때문에 바쁘게 서둘러야 합니다. 지하에서 출입구를 찾으면 또 하나의 관문이 있습니다. 번호키를 넣어야 문이 열립니다. 경비실 호출을 누르면 열어주시기도 하지만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무심한 고객은 경비실 연락으로 적어놓고는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딱 그런 고객을 만난 것이지요. 아무리 경비실 호출을 눌러도 응답이 없습니다. 순간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밤 12시라 고객에게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 알바해서 교회 헌금 더 하려고 하는데 지혜를 좀 주세요!” 순간 1004가 떠올랐습니다. 경비실+열쇠+1004 문이 열렸습니다^^

뉴라이트

쪼개진 광복절... 사상 초유 '따로 기념식'

헤드라인 뉴스 제목을 보고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광복절 행사를 왜 두 군데서 해야 되는가? 자녀들이 물으면 잘 설명해 줘야 할텐데, 이는 단순히 국론 분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국론 분열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론 분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체성의 모호함입니다. 이승만, 김구로 나누어진 국론 분열보다 뉴라이트 식민지사관을 정설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인문학을 따로 공부하기 위해서 목사가 된 후 방통대 교육학과를 지원해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과목 중에 당연히 한국사가 있지요.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일제침략기 시대의 우리 역사가 아직 정리가 안 됐다는 것입니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분이 크리스찬이라는 이유로 그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목사입니다. 저도 크리스찬 편을 들고 싶지만, 성경을 정직하게 읽는 목사라면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시면 다윗 왕은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밧세바 간음 사건, 간접 살인, 인구 조사 등 이스라엘 역사는 다윗의 실수와 죄를 고스란히 적었고 심지어 다윗 본인도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왜곡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영웅이라고 하는 다윗 조차도 자신의 치부를 기록해야 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이승만'이라는 분이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역사 왜곡까지 하면서 건국 기념일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저는 목사로서 뉴라이트 역사관의 세력 중에 물론 친일파도 있지만 몇몇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수 안할까요? 그동안 기독교인 대통령이 있었지만 우리는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거짓으로 덮어서는 안됩니다. 실패의 역사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손에게 우리 정체성을 알려 줄 수 있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인생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이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산을 정복하고 내려올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산을 정복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엄홍길 대장은 이런 멋진 답을 합니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이 허락할 때 잠시 꼭대기에 올라가 보는 것이지요. 무얼 배우느냐고요? 제 민낯을 봅니다." 민낯을 본다니 무슨 말일까요? 산은 4,000미터를 넘으면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고 6,000미터 이상 올라가면 숨 쉬기도 힘듭니다. 이걸 왜 올라가나 싶고 별의별 생각이 다 납니다. 엄홍길 대장의 말로는, 가면이 하나씩 벗겨진답니다. ‘잘난 척하려고 왔구나. 체면이 있지.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돌아가는 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가면이 계속 벗겨지고 본색이 나온답니다. - <인생>, 박영선

실력으로 능력으로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목회 초반에 있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이집트 왕자일 때 자신의 능력으로 히브리인들의 자유를 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실제 사역을 해보면 민낯이 드러납니다.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였나? 알게 되어지고 치사하고 어리석고 자주 넘어지고 실수하는 나의 민낯을 보게 됩니다. 엄홍길 대장도 산 정상에 이를 때 어떤 용기나 모험심이 아니라 자신의 민낯을 본다고 했는데 모든 인생이 그렇습니다. 민낯을 봅니다. 그리고 민낯을 봐야합니다. 나의 민낯을 볼 때 상대방의 민낯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실력으로 가는게 아니라 창피해도 참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민낯이 드러나더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가는게 인생입니다.  

연단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드는 모든 일을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라.  쇠는 달구어야 단단해진다. 당신의 내면도 그 시련을 통해서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하나님이 만약 시련을 먼저 보여주셨다면 저는 목회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힘들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더 힘든 것이 아웃사이더 목회입니다. 아웃사이더 목회란 성경대로 목회하기 위해 성장 추구의 목회가 아닌 질적인 측면에서 한 영혼을 주님 닮는 제자로 만드는 목회입니다. 정치, 돈에 관심을 갖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연단의 길이였고 시련의 길이였습니다. 결과를 보면 과정을 이해하게 되듯 저는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련이 있어야 참된 목회를 할 수 있구나! 나의 영적 성장 없이는 누군가를 가르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시련이 내 인생의 약이 됨을 고백합니다. 

미리 결정

탁월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작가인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 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선과 악은 모두 복리로 증가한다. 이것이 당신과 내가 매일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그토록 무한한 중요성을 지니는 이유다. 오늘 지극히 작은 선행을 하면 몇 달 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승리를 얻기 위한 전략적 요지를 점하게 된다. 오늘 사소해 보이는 정욕이나 분노에 빠지면, 평소 같으면 원수가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능선이나 선로나 교두보를 빼앗기게 된다.” - < 미리 결정하라, 크레이그 그로쉘 지음 / 정성묵 옮김 > 중에서

작은 선한 결정들이 나중에는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대로 작은 악한 결정들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찾아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나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양심 선언을 하고 수 많은 유혹을 이긴다면 이 남자의 가정은 튼튼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삶의 작은 틈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낭패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 작은 선한 결정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미리 결정해 놓고 산다면 마음 속 마지노선을 형성하여서 하루 하루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삶이 무너지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미리 선포하고 결정할 부분을 정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리  결정해 놓으면 선택의 순간에 선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위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 < 참 괜찮은 태도, 박지현 > 중에서

책에서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아이가 그만 사고로 죽게 되고 이를 몰랐던 빵집 사장님은 계속 전화를 겁니다. 오열하고 힘들었던 아이의 부모는 계속된 전화에 짜증이 났고 본인들이 케이크 주문한 걸 깜박 잊고는 그 빵집을 찾아가서 화를 냅니다. 빵집 사장님은 미안하다고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며 자신은 자녀가 없어 당신들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갓 만든 빵이 있으니 먹고 힘내시라고 음료와 빵을 주게 됩니다. 부모는 그렇게 위로를 받게 됩니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어려움을 경험해 봤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위로자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과 배신과 슬픔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이 인간의 고통을 동일하게 겪으셨으니 성도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의 말을 건널 때 그의 슬픔이 전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가 경험했던 고통이 전이되는 것을 느낍니다. 위로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저 보다 더 힘든 분들이 저를 위로해 줄 때 한 없이 미안해 집니다. "아 저 분의 삶의 무게를 내가 아는데!" 각자의 삶의 무게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위로하게 됩니다. 또 위로받게 됩니다. 

비오는 날 우산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양광모 시인이 쓴 ‘우산’

새벽에 기도하면 항상 혼자입니다. 텅빈 교회에서 십자가 불만 켜 놓고 잔잔한 묵상 가운데 도고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교회 나오는 몇 안 되는 성도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특별히 아픈 분들을 위해서... 목회자로서 새벽 기도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우산의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설교는 마음을 찌릅니다. 말씀을 듣다가 죄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물론 말씀으로 위로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말씀은 영혼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친 일상에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기도입니다. 구제입니다. 선교입니다.
 요즘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나름 기도해주고 있는데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주지 않는다고...
  "텅빈 예배당에서 혼자 기도하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억울해도 오늘 또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경외

아침 매일성경 묵상 본문 예레미야 37:1-10절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설명란에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쉬을 때만 찾는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넣거나 감옥에 감금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경고의 말씀이 있어서 바벨론에 항복한다면 그는 두 눈이 뽑힐 일도 없었고, 괴로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결국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며, 자기 생각대로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애굽의 군대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위에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요 경외의 대상입니다. 고난이 오거나 힘들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비록 경외심이 없이 기도하는 자의 기도도 응답하시기도 하지만, 주님이 진짜 들으시는 기도는 경외하는 자의 기도입니다. 경외하는 성도는 즐거울 때는 찬송하고 주님을 예배합니다. 고난이 올 때 누구나 기도하지만 즐거울 때, 일이 형통할 때는 사람은 쾌락에 빠지곤 합니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의 태도는 경외입니다. 즐거울 때 내 입술에 찬송이 흥얼거리며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 복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복은 ‘무릎을 꿇다’는 뜻입니다. 즉, 복은 하나님께 무릎 꿇는 태도, 경외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재물이나 건강, 복이 아니라 주님께 무릎 꿇는 삶이 복이라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경외를 회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안정감

어제 오늘 참 비가 많이 왔습니다. 아침에 운전할 일이 있는데 번동에서 신교동으로 가는 길은 많이 막힙니다. 아침 8시에서 9시 20분 정도 평소 5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20분이나 걸렸습니다. 가는 길에 터널이 3개가 있습니다. 그 중 자하문 터널은 아침에는 참 많이 막힙니다. 공항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터널 안에서 가슴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운전할 때는 심리적으로 우울감과 공항장애 비슷한 어떤 묘한 답답함이 몰려올 때가 있어서 저는 터널을 싫어합니다. 그러다 빛이 보이면 안정감을 갖게 되고 터널을 빠져 나갑니다. 그런데 어제나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터널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습니다. 평소 제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증상은 사라지고 터널 안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지요. 불쾌한 터널이 유쾌한 터널로 다가 올 줄 몰랐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은 폭풍이 몰아치고 불 가운데로 지나는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평안입니다. 즉,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나와 함께 하고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평안하다고 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평안해야 평안한 것이지요. 돈도, 명예도 마음에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비오는 날씨의 터널이 유쾌한 터널이 된 것처럼 우리 인생도 얼마든지 최악의 상황이 최상의 상황으로 받아 들여질 수 도 있고 광야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안정감을 가지세요! 마음이 차분해야 환경도 정리됩니다. 

인플레이션

독일의 경제학자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산을 잃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과 전쟁채권을 발행하고 화폐 발행을 남발하여 경제적 혼란을 일으킨 자들이 책임져야 할 책임을 무고한 시민들이 떠맡은 것이다. 독일 민족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하고 증오심에 불타올랐다. 정부가 조장한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 된 국민들은 히틀러의 등장을 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 인플레이션,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 중에서
 정치인이 잘못하면 초인플레이션이 오고 지폐 발행해서 빚은 해결하지만 통화량이 늘어 물가는 오르고 결국 국민들은 뉴스를 보면서 물가 오른것이 원자재값 상승때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인이 자기 빚을 이런식으로 국민들에게 떠넘깁니다. 해외순방 빚을 국민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속이는 세금을 내는 형국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경제적 기근이 나타나게 됩니다. 항상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인의 잘못으로 비롯됐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똑똑한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나라는 누가 이끄느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지도자의 사치가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정확히 말합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언 11:14절

잘 먹어야 합니다

 절약형질 가설Thrifty Phenotype Hypothesis’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이 분야에 학문적으로 큰 기여를 한 데이비드 바커David Barker 박사의 이름을 따 ‘바커 가설Barker’s Hypothesis’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기 당뇨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태아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영양분이 부족할 때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영양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아는 뇌와 같이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당장 내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합니다. 설사 그 선택이 먼 훗날 당뇨병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할지라도, 지금의 생존을 위해 먼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성인병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 중에서

 이 책에서 중국의 대약진 운동 때 굶주린 사람들과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기근이 때 태어난 아이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임산부가 굶으면 아이의 수명이 짧아지고 성인병에 더 잘 걸린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임신 중이라면 정말 잘 먹어야 합니다. 아이 때 잘 못 먹으면 신체 기관 형성이 비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성인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사담입니다만 제 아내가 임신 중일 때 가끔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한 겨울이라도 프라프치노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나가서 사오곤 했습니다. 유일하게 못 사준 것이 '더덕구이' 였습니다. 당시는 배달 문화가 발달한 상황도 아니라서 어디서 '더덕구이'를 파는 지 몰랐습니다. 아내가 임신할 때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지금은 아내의 생일 때 마다 '더덕구이'를 요리해서 아침 상을 차려줍니다. 

 태아 때 부터 잘 먹어야 합니다. 어릴 때 잘 먹는 것이 성인이 될 때 건강을 책임집니다. 

행복이란?

행복이란?
자신이 속한 곳에서 Place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Love
삶의 목적을 위해 Purpose
자기 일을 하는 것 Work - <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리처드 J. 라이더, 데이비드 A. 샤피로 >
흔히 맴버십이라고 하죠. 소속감은 중요합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소속감이 없다면 오래 근무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가족과 직장동료와 친구들과 참된 사랑이 없으면 관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삶의 목적이 없다면 무기력증에 빠지게 됩니다. 직장인 보다는 오너가 더 행복합니다. 자기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은 행복의 4가지 조건이 있느냐 입니다. 돈은 조금 덜 벌어도 행복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행복을 당연히 느껴야 하는 곳은 교회입니다. 위에 행복의 조건이 모두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행복한 곳이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

잘못된 사람 + 잘못된 장소 + 잘못된 시간 = 잘못된 일이 발생함
기독교 서적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윗왕은 밧세바를 범할 때 공식이 딱 저렇습니다. 전쟁 중에 왕이 궁에 있고 저녁에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로 인해 간음 죄를 저지릅니다. 여기서 잘못된 사람은 다윗이라는 공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공식에 대입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즉, 잘못된 사람은 가변적이라는 것이지요. 다윗은 잘못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장소나 잘못된 시간을 좋은 사람이 가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한다면 좋은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나라는 변수를 좋은 상수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환경이든 시간이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영업자의 눈물

『그렇다면 국내 서비스업의 업종별 분포는 어떨까? 한국의 서비스업을 책임지는 업종은 과거 대비해서 변화는 있었지만, 모두 저부가가치 업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20년 전인 2004년의 취업자 수 기준 한국의 3대 서비스업종은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40.1%), 사교육비가 거의 준조세인 나라답게 2위가 교육서비스업(10.5%), 그리고 3위가 운수 및 창고업(7.8%)이었으며, 2022년 기준으로는 역시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이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 비중은 27.9%까지 하락하였다. 

  그 자리를 고부가가치 산업이 차지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업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보건 및 사회복지업으로, 2004년 4%에 불과했던 비중이 2022년에는 13.8%로 3배 이상 증가해 교육서비스업으로부터 2위를 빼앗았다. 교육서비스업이 사회복지업에게 서비스업 취업자 수 2위를 빼앗긴 건 공교롭게도 출산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한 2017년인데, 이런 순위의 교체는 우리나라 사회가 소멸로 달려가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국내 서비스업의 고용을 절반 이상 떠받치고 있는 이 3대 업종의 가장 큰 특성이 바로 영세함이라는 사실이다. 국내 서비스업의 영세성은 자영업률로 측정할 수 있는데, 한국은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업에서 나타나는 자영업률 비중이 다른 국가보다 매우 높은 경향을 지닌다. 한국의 도매 및 소매업 자영업률은 2018년 기준 38.6%, 운수 및 창고업은 42.9%에 달했으며 숙박음식점업은 39.3%를 기록했다. - <자살하는 대한민국>, 김현성』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물가가 높은 편이고 서비스분야는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자영업자들은 낮은 임금으로 높은 물가에 재료비를 사니 이윤이 적은 것입니다. 자영업자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찍 퇴직을 하고 할 것이 없어서 떠밀려서 자영업자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내수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합니다. 그래서 낮은 단가로 판매 하다보니 노동 생산성이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급여는 작게 받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영업자의 눈물이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저도 작은 개척교회 목사이지만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자영업자도 힘들고, 청년들도 힘들고, 노인도 힘듭니다. 복지가 제대로 되면 좋겠지만 증세할 돈이 국민들 수중에 없습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한 번도 교회 헌금을 해야 한다고 설교 중이나 성경공부 중에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진짜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냥 교회 와 주시는 것이 고맙고 같이 예배드림이 기쁨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기 저기 빠져 나갈 돈도 많은데 헌금 강요까지는 못하겠습니다. 교회에서 만큼은 성도들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만나고 위로 받고 변화된 인생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자영업의 눈물을 공감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84

정말 좋은 책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재밌게 읽었지만 1984도 텔레스크린과 사상교육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는 정치 권력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이 책을 읽고 배운다면 한국 정치 수준이 많이 향상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중에 2+2=5라는 설득에 주인공 윈스턴이 2+2=4인데 어떻게 5가 될 수 있냐며 항의합니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 상식은 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상 교육을 받아야 하는 북한 정권이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국가 지도부의 말이 진리가 되기 때문에 2+2=5라고 해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조정하고나 지우면서까지 사상 교육을 시키지만 진리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내면 깊이 있어서 꺽을 수 없음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책을 읽었을 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주신 자유의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그 어떤 정권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소멸시키지는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아시면서도 자유의지를 선물하신 것은 인간이 진리를 향한 여정을 감당할 숙제를 주신 것입니다. 내면에 이러한 진리를 향한 열정이 있기에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책에서는 사상교육과 세뇌교육에 당 사상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정상적인 돌연변이는 등장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 조차도 꺾지 못한다면(하나님은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십니다!) 세상 어떤 정치와 이념이 인간의 자유를 속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오늘 하루도 내가 생각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세이노의 가르침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다릅니다. 부유한 가문의 자녀들은 경험이 없기에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 두려워 다시 일어서기가 힘듭니다. 반면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내려가서 시작하면 되기 때문에 빨리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 대출로 빚이 생겼을 때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단칸방으로 시작해서 빚부터 갚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단칸방이 불편한 사람은 또 다른 대출 빚으로 본인의 수익을 은행 이자 갚는 데 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제로점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빨리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이죠.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잠언 13:7절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일어섭니다.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책 저자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고 그것을 귀한 재산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교육학 논문을 쓰면서 부르디외의 문화자본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는 이제 문화 자본을 누가 더 많이 경험하고 숙련되느냐의 싸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중요한 자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실패의 경험입니다.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서 성공하게 됩니다. 그럴려면 밑바닥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절한 고난의 삶에서 회복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와도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회복 탄력성'이 있어서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도 또 다른 종류의 문화자본이 될 것입니다. 

결핍과 중독

시지포스처럼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산 꼭대기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운명, 현대인의 삶은 어쩌면 이러한 중독의 측면이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중독, 물질 중독, 게임 중독, 고지를 찍는데 허무합니다. 왜 사람들은 중독에 걸릴까요? 어느 책에 보니 중독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사랑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한 마음에 한 부분이 어른이 되어서는 돈을 벌 수 있으니 그 벌이로 자기 만족을 위한 중독 성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분을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사랑의 결핍 때문일까?" 저는 진짜 이유는 욕망의 결핍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가난하여서 받지 못한 생일 선물, 장난감, 다니지 못한 학원, 맛있는 간식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이제는 내가 번 돈으로 채울 수 있다면 쉽게 중독에 걸리지 않을까요? 어른이 되어 자유까지 있으니 쉽게 중독에 걸릴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시지포스의 무거운 돌처럼 언젠가는 내려갈 수 밖에 없는 허무함이 있습니다. 욕망을 채우는 것은 끝이 없으니 중독도 끝이 없겠지요!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 힘으로 절대 이 중독을 끊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법 위에 양심

독일 기본법 제97조 “법관의 독립성”에는 양심이 거론되지 않는다. “법관은 독립적이며, 법률에만 따른다”라고 되어있다.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규정은 우리와 일본 외에는 없다고 한다. 법의 집행은 법관의 양심이 아니라 오로지 법률의 규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는 양심을 빌미로 재판이 법률로부터 독립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법관의 양심이 또 다른 법원(法源)이 될 수는 없다”라고. 도덕적 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양심은 개인의 도덕성이 바르지 못할 때는 기만이다.- <피곤한 교인, 피로한 교회>, 전병식
 맞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법 위에 양심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양심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정치적입니다. 법관의 양심을 지배하는 것이 정치 권력이라면 어찌 법관의 양심적 판단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애초부터 인간의 양심을 믿는 것 자체가 잘 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법률적으로 판단한다면 대한민국에 억울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애매한 양심보다 중요한 것은 법률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매한 내 양심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의 기준입니다.

교회 설립 2주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온라인 예배로 시작해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고 주일날, 수요일날 말씀 선포케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두란노 서원을 만들고 에베소 핵심 맴버들을 양육시킨 것에 큰 도전을 받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사람이 개설한 학당'을 말하며 두란노는 강연장이 됐습니다. 이 사람은 유명한 에베소의 철학자이고, 수사학자였으며 에베소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이고, 가장 많은 학생들을 가지고 있었던 선생이고, 때문에 가장 큰 서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곳 에베소에 왔을 때에 이 두란노 서원은 아마 비어 있었는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전도 당시 2년 동안 사용했던 강연장(행19:9)으로 바울이 이 '두란노 서원'에서 행19:10“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특별 말씀 훈련을 실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9절에서는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울은 경을 깊게 가르친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두란노 서원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척교회도 충분히 말씀으로 양육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준비되어지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부흥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공사 중'

한 목사님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희망을 가지고 개척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김 씨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는 공무원이었고 몇 안 되는 남성 교인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이분이 예배가 끝나면 꼭 목사를 찾아와 그날의 설교를 비판했습니다. 점점 이 비판이 심해지자 설교 시간에 다른 교인들은 보이지 않고 김 씨만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점점 김 씨가 두려워졌고 나중에는 김 씨를 생각하면 분이 치밀었습니다. ‘성도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는 목사 자격이 없다,’ 자책하며 교회를 그만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를 걷다가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공사 중’ 팻말이 보였고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공사 책임자 백.” 그런데 그 팻말을 읽는 순간 그는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하 그래 김 씨도 공사중이야! 그리고 목사님은 기도 중에 자신도 ‘공사 중’임을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공사 중입니다. 이를 안다면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지 않을까요?

의미 추구가 사라진 시대

막스 베버는 ‘영혼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자’야말로 인간이 도달하게 될 마지막 지점이라며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화자찬할 것이라 했다. 그는 더 이상 ‘의미’에 대해 묻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 ‘마지막 인간’에 대해 말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의미를 먹고 산다는 현인들의 말씀이 무색해지는 시대다. - <일상 순례자>, 김기석
 막스 베버의 예언이 맞는 걸까요? 우리는 의미 추구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9절 그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맛집 탐방과 어떻게 유희적 삶을 살 것인가에 몰두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국민연금 논의를 보면서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쾌락에만 몰두하는 인간의 한계성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을 고루한 학문이라 생각하고 말씀을 깊이 있게 보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자가 희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라도 의미 추구자로 삽시다! 

기독교와 선거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고 핵이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명하게 치러지면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선거부정은 막아야 한다. 오늘 한국 선거가 이만큼이라도 공명하게 된 것은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이 그들의 시간, 돈, 정력을 바쳤기 때문이다. 4.19 혁명 때 수 많은 젊은이들이 공명선거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이미 1987년에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을 만들어 시민운동를 벌였다. 1982년에 조직되어 선거법 개정에 크게 공헌한 <공명선거시민운동협의회>도 기독교인들이 시작했다. 한국 교회는 그 유산을 잘 살려서 선거부정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저지르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으며 고발하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그것은 시민의 의무일 뿐 아니라 돈, 연고 등 올바르지 못한 이유로 투표하는 사람들의 상대적 가치를 약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온다. - 손봉호 교수 

진짜 회심

“회심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당신은 평생 하나님을 믿었을지 모르지만, 회심하려면 그분이 당신이 바라는 신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분은 그분이다. 그분께는 무서운 면도 있고, 난감한 면도 있고,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바른길에 들어선 것이다.” -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신학교 다닐 때 신약학 교수님이 성경을 읽다가 낯선 예수를 발견해야 된다고 거듭 강조한 사실을 기억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말처럼 진짜 회심한 영혼은 하나님의 무서운 면, 난감한 면을 알게 될 때 나의 죄를 보고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만들어 낸 신이 아니라 진짜 신을 만나고 싶다면 꼭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